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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회 - 2차 세계대전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
    • 수정일자 : 2016-06-13
    • 분류 : 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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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유격대 장례식에서 어머니들의 절규, 이탈리아 나폴리, 1943년 10월 2일
      ⓒ Robert Capa / Magnum Photos

       

       

       

                        카파는 스스로를 리포터라고 생각했다. 포토저널리즘의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후 젊은 카파에게 더
                        이상의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아프리카, 이탈리아,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해방과 수많은 전쟁사진을
                        촬영한 카파는 전쟁이 미화되는 것을 공격해 왔지만 정작 자신은 전쟁 없이 살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에 라이프 지가 카파에게 미국 내의 사소한 취재로 바쁘게 하자 그는 다소
                        짜증이 났고 사직하겠다고 위협을 하였다. 라이프 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유럽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
                        다. 때는 1941년 봄이었다. 그는 비행기와 배를 실은 수송선에 몸을 실었고 그 수송선은 44척의 상선의 
                        호위를 받으면 서대서양을 횡단하여 마침내 리버풀에 도착하였다.  

                        1943년.  카파는 독일군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침략에  대항하는 연합군의 총공격을 취재
                        하기 위해서 북아프리카 전선에 갔다.   곧이어 카파는 이탈리아에  상륙을 했고 제82공수단과 영국장
                        갑단을 따라서 파괴된 나폴리로  들어갔다.  그 곳은 집을 잃은 수천가구들이 폐허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가 취재하는 동안 독일군이 설치해 놓은 대인 위장  폭탄이 공공건물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보메로 지역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한 선생님의 지도아래 10대 학생들이 
                        총과 화약을 훔쳐 독일 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학교에 소년 유격대의 시체가 입관된 20개의 관이
                        있었다.  그 관들은 나이어린 아이들을 위한 관이었기에 관의 끝으로 발이 삐져나왔다.카파는 그 때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로 가는 길은 학교건물 앞에 말없이 슬픔에 잠긴 행렬로
                        차단되었다. 학교 안에는 제대로 조화가 덮이지 않았고 너무 길이가 짧아서  발을 다 가리지 못한 유치
                        한 관 20개가 있었다.  나폴리의 소년들은 소총과 실탄을 탈취하여 연합군이 진군할 때까지 4일간 독일 
                        군과 싸우다 죽은 것이다  ” 이 날 카파는 소년들의 장례를 치르며 오열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촬영하
                        여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생생하게 전했다.

                        글 : 이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