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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회 - 전설이 된 사진가
    • 수정일자 : 2016-06-13
    • 분류 : 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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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Robert Capa ⓒ 2001 by Cornell Capa / Magnum Photos
      국립묘지의 한 무덤 앞에서 아이를 안고 슬프게 울고 있는 어머니. 베트남, 1954년 5월 21일

       

       

      Copyright. Robert Capa ⓒ 2001 by Cornell Capa / Magnum Photos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북쪽으로 진군하는 프랑스 군대 옆에서 소로 논을
      갈고 있는 농부. 베트남, 1954년 5월 25일. 인도차이나 전쟁은 1946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독립을 둘러싸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 군대와
      프랑스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1954년 7월 제네바에서 체결한
      휴전 협정에 의하여 일단락되었는데, 이로써 인도차이나 반도의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독립을 하고 베트남은 월맹과 월남으로 나뉘었다.
       


       

      Copyright. Robert Capa ⓒ 2001 by Cornell Capa / Magnum Photos
      '남딘에서‘타이빈'으로 가는 길을 따라. 논을 가로질러 행군하는 베트남 군인들.
      베트남, 1954년 5월 25일.   


       

      Copyright. Robert Capa ⓒ 2001 by Cornell Capa / Magnum Photos
              이것이 카파의 마지막 사진으로 그가 지뢰를 밟기 바로 직전 촬영되었다. 베트남, 1954년 5월 25일. 

       

                          1954년 5월 25일 아침 7시에 카파는 짚 차에 몸을 실었다. 숙련된 종군기자인 카파는 카메라와 필름 

                          그리고 술병과 냉차병을 휴대했다. 200대 차량으로 대략 2천명의 군인들로 된 기동부대를 수송했다.  

                          그리고 남딘 교외에서 강을 배로  건너기 위해서 기다리는  동안에 카파는 그의 동료들에게 그 날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8시 40분에,  선도차량들이  저격병의 공격을 받아 차량이 궤멸되어 멈추어 서자 프랑스 기갑부대가

                          포격으로  응수했다.  카파는 돌격하면서 논에서 일을 하는 월남 농부의 모습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그들은  전투 상황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

                          들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카파는 엄호를 받으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그들 뒤에서 포격전이 진행

                          되는 가운데 농부들의 사진을 찍으려고 논으로 걸어들어 갔다. 

                          이윽고 트럭이 지뢰 위를 지나갔을 때에 폭발로 인하여 4명이  죽고 6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번에는

                          종대가 박격포와 저격병의 공격을 받았다. 종군사진가, 루카스는 훗날 전투를 묘사했다.  “적의 박격

                          포가 우리 종대를 향해서 날아 왔다. 저격병들은 이따금 낙오병들을 쏘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포도 

                          반격의 포성을 울렸다.  도로에 연해있는 촌락들은 탱크들이 포탄을 마을로 던져서 마을에 불이 붙었

                          다.  저격병을 숨겼던 버려진 교회는 파괴되었다. 카파는 어디에나 있었다.  한번은 박격포가 날아와

                          부상당한 베트남 군인을 짚차에 싣고서 한 초소로 데려갔다. 종군사진가,  맥클린는 당시 상황을 “해

                          는 쨍쨍 내려 쪼였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뒤쪽에서 프랑스 대포, 탱크와 박격

                          포의 소리, 왼쪽에 있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 속으로부터의 소총소리, 오른쪽에 있는 다른 마을에

                          서 폭발하는 프랑스 포탄과 뒤섞인 소총소리,  지래와 적의 박격포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소리가 끊이

                          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너무 위험하여 누구든 주변을 서성거리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그러

                          나  카파는 다섯 번째 전쟁이었고 위험을 판단하는데 전문가였다. 카파는 마치 과감하게 나가기 전에 

                          총성이 잠잠하기를 잠시 동안 기다리는 것처럼 짚 차 뒤에 서있었다. 그는 왼쪽으로 구부러졌던 길 위

                          로 재빨리 걸어 올라간 다음에 길옆에 있는 도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높 이 자란 풀을  해치고 전

                          진하는 프랑스 소대의 사진을 찍었고 차량이 다시 이동을 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들의 차량 옆을 어슬렁

                          거리는 군인들의 사진을 몇 장을  더 찍기 위해서 길 위로  다시 기어 올라 찍은 뒤에 논에 있는 소대를 

                          따라잡기로 결정했다. 그는 두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그것이 그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그는 다른 

                          각도에서 군인들을 찍으려고 도랑의 풀이 있는 경사를 기어오르다가 대인 지뢰를 밟은 것이다.  맥클린

                          과 루카스가 카파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으려고 앞으로 달려갔다. 로버트 카파는   한 

                          손에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다.  그는 왼쪽 다리가 잘려나가고 흉부가 파열된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

                          서도 사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맥클린은 카파의 이름을 불렀고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나 아

                          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카파는 전쟁터에서 피어나 불혹의 나이에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그는 베트남에서 순직한 첫 번째 미국인 포토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글 : 이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