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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회 - 나의 사전에는 포기란 없다
    • 수정일자 : 2016-06-13
    • 분류 : 카르티에-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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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프랑스 파리, 1944년 8월 


       

       

      군중 속으로 숨으려다 발각된 게슈타포, 독일 내 미군과 소련군의 점령지역 사이
      에 위치한 난민 캠프, 1945년 4월
       


       

      2차 세계대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라인강의 다리, 1944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학창시절 문학, 철학, 시에 관심을 가지고 폭넓은 독서, 예컨대 엥겔스, 

                        프로이드, 랭보, 생 시몽, 쇼펜하우어 등을 탐독하면서 1930년대 중반 파시즘, 나치즘의 팽창에 

                        맞서 좌파 지식인으로 성장해 갔다. 



                        그는 1937년에 공산당 일간지인 스 수아르(Ce Soir)의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세이무어를 만났다. 그들은 파리 센 강 남쪽 기슭의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정치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그곳을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 사회주의에 

                        관한 격렬한 토론의 장소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1939년에 징집되어  2차 대전 중에 프랑스  군의 영화사진부대에서  상병으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처음에 독일 서남부의  삼림지대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보내

                        졌던  그는 들에서 감자를 심는 강제 노역을 했다.  곧 동료 포로와 함께  첫 탈출을 시도하였다.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숲 속에서 잠을 자면서 스위스 국경지대 까지 갔을 무렵 폭설이 내리기 시작

                        했다. 그들은 행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그들은 붙들려 20일간의 독방감금에 처하는 선

                        고를 받게 되었다. 그 뒤에 폭탄상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노역을 하던 그는 재차 시도했으나 24시
                        간 이내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두 번의 탈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1943년에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였다. 그는 외국노동자로 변장하여 파리로 귀환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즉시 레지

                        스탕스에 가입했고 전복을 기도하는 사진부대를 조직하여 독일점령을 기록했다.

       

                        글 : 이기명